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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싯돌

전쟁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던 씩씩한 군인이 있었다. 그는 우연히 늙은 마녀를 만나고, 마녀는 오래된 나무 안에 있는 부싯돌을 대신 가져다 주면 큰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무일푼이던 군인은 귀가 솔깃하고, 마녀의 말대로 오래된 나무 안으로 내려간다. 그는 나무 안에서 막대한 금화, 은화를 지키는 거대한 눈을 가진 개들을 마주치는데...<부싯돌>은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이 세상에 선보인 첫 작품으로, 흥미진진하고 대담한 모험의 세계가 매혹적이다. 함께 수록된 <공주와 완두콩>, <하늘을 나는 트렁크>도 안데르센 작품이다. 전자는 진정한 공주와 가짜 공주의 차이점을 구별하는 재미있고 신기한 단편이다. 후자는 무일푼으로 내몰린 젊은이가 뜻밖에 하늘을 날 수 있는 마법의 트렁크를 손에 넣으며 벌어지는 신기한 ..
전쟁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던 씩씩한 군인이 있었다. 그는 우연히 늙은 마녀를 만나고, 마녀는 오래된 나무 안에 있는 부싯돌을 대신 가져다 주면 큰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무일푼이던 군인은 귀가 솔깃하고, 마녀의 말대로 오래된 나무 안으로 내려간다. 그는 나무 안에서 막대한 금화, 은화를 지키는 거대한 눈을 가진 개들을 마주치는데...<부싯돌>은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이 세상에 선보인 첫 작품으로, 흥미진진하고 대담한 모험의 세계가 매혹적이다.

함께 수록된 <공주와 완두콩>, <하늘을 나는 트렁크>도 안데르센 작품이다. 전자는 진정한 공주와 가짜 공주의 차이점을 구별하는 재미있고 신기한 단편이다. 후자는 무일푼으로 내몰린 젊은이가 뜻밖에 하늘을 날 수 있는 마법의 트렁크를 손에 넣으며 벌어지는 신기한 여정을 담고 있다. 안데르센 특유의 기발하면서도 유쾌한 상상력과 영롱한 재능이 돋보인다. 매력적인 삽화가 이야기의 즐거움을 한층 더하게 해준다.
- H. C. 안데르센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덴마크의 작가다. 1805년 4월 2일 덴마크 오덴세에서 태어났다. 동화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창작 동화를 많이 남겼다. 또 동화 외에도 희곡, 여행기, 소설, 시 등 여러 장르에 걸쳐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어릴 때부터 여러 허드렛일을 해야 했다. 가난과 노동 속에서도 그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14세 때 꿈을 이루고자 코펜하겐으로 갔다. 소프라노 목소리가 좋았던 그는 덴마크 왕립극장에 들어갔다. 그러나 곧 변성기가 찾아와 꿈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크게 낙심했으나, 평소 안데르센의 글솜씨를 눈여겨 보던 지인이 글을 써보라고 권유했다. 덴마크 왕립극단 감독 요나스 콜린은 특히 안데르센을 아껴서, 왕립 장학금을 받아 문법학교에 진학하도록 주선했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안데르센은 20대 중반 마침내 첫 정식 단편 소설 《홀멘 운하에서 아마게르 동쪽 끝까지의 도보 여행》(1829)을 펴내 큰 호평을 받았다. 이후 수년 간 다양한 글을 쓰고, 유럽을 여행하며 견문을 넓혔다.

1935년 그는 9편의 동화를 담은 《어린이를 위해 들려주는 동화. 첫 번째 모음집》(덴마크어: Eventyr, fortalt for Børn. Første Samling.)을 펴냈다. 이는 그가 동화 장르에 처음 도전한 작품집으로, <부싯돌>, <공주와 완두콩>, <인어공주>, <엄지공주>, <황제의 새 옷> 등 주옥 같은 창작 동화가 수록되었다.

1947년 그는 영국을 방문해 당대 유명한 문호 찰스 디킨스와 만나 깊은 우정과 교류를 나누었다. 두 사람 다 서로의 작품을 존중했으며, 산업 혁명과 극심한 빈곤으로 인해 종종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하층민을 묘사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안데르센의 작품 특히 동화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널리 사랑받았으며, <성냥팔이 소녀> 등은 연극으로 공연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안데르센은 9권의 동화책을 펴냈고, 총 156편의 동화 작품을 남겼다. 그는 평생에 걸친 작품 활동에 대한 공로로 적수리 훈장과 프로메테우스 상을 수상했다. 그의 동화는 12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며 두 세기가 넘도록 각국에서 사랑받는 영원한 고전이 되었다.

1872년 초, 67세 때 안데르센은 침대에서 떨어져 큰 부상을 입었다. 그는 이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간암의 징후를 보였다. 1875년 8월 4일, 그는 70세의 나이로 코펜하겐 근처 가까운 친구인 은행가의 집에서 사망했다. 사망 직전, 안데르센은 작곡가와 자신의 장례식 음악에 대해 상의하며 "내 뒤를 따라 걸을 사람들 대부분은 아이들일 것이니, 작은 발걸음에 맞춰 박자를 맞추세요." 라고 말했다고 한다.

평생 독신이었던 그의 시신은 코펜하겐의 한 교회 묘지에 묻혔다. 사망 당시 그는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며, 덴마크 정부는 그를 "국가의 보물"로 여겨 연금을 지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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