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고색창연한 글레가일 성은 대대로 악명을 떨친 사악한 영주들로 유명하다. 이 글레가일 가문의 마지막 영주는 귀머거리에 거의 벙어리인 단 하나의 과묵하고 성실한 집사 겸 하인 이스라엘 가우를 거느리고 은둔 생활을 한다. 분명히 영주가 그 성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마을 사람들 누구도 그 모습을 본 적 없다. 어느 날, 이스라엘 가우는 영주가 사망했다며 혼자 무덤을 파고 묘비를 만든다. 유럽 최고 범죄자에서 브라운 신부를 만난 후 개과천선해 탐정이 된 플랑보와 런던 경찰청 경감, 그리고 브라운 신부는 영주의 사망 전모를 파헤치기 위해 글레가일 성에 잠입한다. 성에 남겨진 기이하기 짝이 없는 유물들, 묘한 실크 모자를 쓰고 스코틀랜드 특유의 격자 무늬 머플러를 두른 채 묵묵히 삽질에 열중하는 의문의 하인, 과연 영주가 정말 이 성에 살았는지 또 자연사한 게 맞는지 모든 게 미스터리인데...
<이스라엘 가우의 명예>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 문호 길버트 체스터튼의 기념비적 추리 소설 브라운 신부 단편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이다. 1911년 3월 25일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기이한 정의'라는 제목으로 처음 발표되었다. 을씨년스러운 고성을 배경으로 기이하리만치 독특한 정의를 구하는 색다른 이야기가 강점이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영국 BBC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모았다.
- G. K. 체스터튼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Gilbert Keith Chesterton, 1874년 5월 29일 ~ 1936년 6월 14일)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영국 작가 중 하나다. 런던 켄싱턴에서 태어난 그는 세인트폴 스쿨을 거쳐 슬레이드 스쿨에서 미술을,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체스터튼은 전기(傳記), 종교 문학, 시(詩), 판타지, 탐정 소설, 철학적 담론 등 다양한 분야의 집필 활동을 했다. 특유의 재기발랄하고 독창적인 역설의 적절한 사용을 통해 '역설의 대가'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호탕한 성격과 육중한 체구의 소유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철학적, 종교적으로는 13세기 스콜라 철학의 거두인 저명한 토마스 아퀴나스, 문학적으로는 영국 문학 거장 찰스 디킨스의 영향을 받았다. 또 생전에 H. G. 웰스, 조지 버나드 쇼, 힐레어 벨럭, 막스 비어봄 등 다방면의 걸출한 인사들과 우정을 나누었다.
한편 체스터튼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저명인사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판타지 문학 거장으로 우뚝 선 J.R.R. 톨킨, 19세기 가장 중요한 시인 T.S. 엘리어트 등이 있다.
많은 독자가 체스터튼의 소설들에 대해 큰 찬사를 보냈다. 런던 교외에서 벌어진 내전을 다룬 로맨스 소설 <노팅힐 가의 나폴레옹>, 단편집 <별난 손님들이 모이는 술집>, 그리고 큰 인기를 모은 우화 소설 <목요일의 남자>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소설을 사회적 가치판단과 결부시키면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사례로는 역시 로마 카톨릭 사제 겸 탐정인 신부를 등장시킨 <브라운 신부>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
1911년에 발표된 〈브라운 신부의 결백 The Innocence of Father Brown〉를 필두로 1914년 〈브라운 신부의 지혜 The Wisdom of Father Brown〉, 1926년 〈브라운 신부의 불신 The Incredulity of Father Brown〉, 1927년 〈브라운 신부의 비밀 The Secret of Father Brown〉, 그리고 1935년에 발표된 〈브라운 신부의 추문 The Scandal of Father Brown〉이 그것이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 아가사 크리스티의 포와로 시리즈와 함께 영국의 정통 탐정 삼인방으로 거론될 정도로 유명하다. 현재에도 드라마와 영화로 계속 제작되며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증거주의에 철저하여 과학적 추리의 효시라 할 홈즈를 롤모델로 한 다른 탐정들과 달리, 브라운 신부는 사제라는 직업적 특성을 잘 살려 범죄자의 심리를 간파해 나가는 독특한 기법으로 사건의 진상에 도달한다. 또 인간성과 죄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이 돋보여 체스터튼만의 통찰력이 빛을 발휘한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저작을 남기고 당대 지성들과 교류하며 19~20세기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한 체스터튼은 1936년 초여름 영국 버킹엄셔 비컨즈필드에서 숨을 거두었다. 같은 해 그의 일대기를 기록한 〈자서전〉이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