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버논 호텔은 매년 연말, '12인의 진정한 어부들'이라 불리는 클럽 멤버들만을 초대한 화려한 만찬을 연다. 이 클럽 멤버들은 사회 이면에서 막대한 돈과 권력을 은밀하게 움직이는 금권 정치가 귀족들이다. 12명의 실력자들은 버논 호텔에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신들만의 배타적이고 까다로운 최고급 요리와 서비스를 즐긴다. 15명의 호텔 종업원 역시 완벽하고 철저한 절차를 지키며 이들에게 봉사한다.
어느 해 만찬이 열리는 날, 불운하게도 15명의 종업원 중 한 명이 갑자기 목숨을 잃는다. 유태인 호텔 주인 레버는 하필 '12인의 진정한 어부들' 멤버들을 초대한 날 일어난 이 사태에 크게 당황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죽은 종업원의 장례를 위해 신부의 방문을 요청한다. 브라운 신부는 절대로 손님들 눈에 띄지 말라는 신신당부 속에 죽은 종업원의 시신을 살피고, 장례 미사를 드린 후 관련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잠시 카운터 뒤의 작은 방을 빌린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시간, 서류 집필에 몰두하던 신부는 기이한 발걸음 소리를 듣게 되고 의문을 느끼는데...
<기이한 발소리>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 문호 길버트 체스터튼의 기념비적 추리 소설 브라운 신부 단편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에 등장하는 유명한 천재 도둑 플랑보와 브라운 신부가 다시 대결한다. 완벽한 트릭으로 감쪽같이 모두를 속이며 유럽 전역의 공권력을 조롱한 플랑보는 브라운 신부로 인해 일생일대의 전기를 맞게 된다. 뛰어난 추리력뿐 아니라, 인간성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을 지닌 브라운 신부만의 독창적 캐릭터성이 빛나는 이야기이다. 특히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위계질서가 까다로운 영국 상류 사회의 허위를 날카롭게 풍자하는 체스터튼의 번뜩이는 위트와 지성 역시 돋보인다.
- G. K. 체스터튼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Gilbert Keith Chesterton, 1874년 5월 29일 ~ 1936년 6월 14일)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영국 작가 중 하나다. 런던 켄싱턴에서 태어난 그는 세인트폴 스쿨을 거쳐 슬레이드 스쿨에서 미술을,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체스터튼은 전기(傳記), 종교 문학, 시(詩), 판타지, 탐정 소설, 철학적 담론 등 다양한 분야의 집필 활동을 했다. 특유의 재기발랄하고 독창적인 역설의 적절한 사용을 통해 '역설의 대가'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호탕한 성격과 육중한 체구의 소유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철학적, 종교적으로는 13세기 스콜라 철학의 거두인 저명한 토마스 아퀴나스, 문학적으로는 영국 문학 거장 찰스 디킨스의 영향을 받았다. 또 생전에 H. G. 웰스, 조지 버나드 쇼, 힐레어 벨럭, 막스 비어봄 등 다방면의 걸출한 인사들과 우정을 나누었다.
한편 체스터튼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저명인사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판타지 문학 거장으로 우뚝 선 J.R.R. 톨킨, 19세기 가장 중요한 시인 T.S. 엘리어트 등이 있다.
많은 독자가 체스터튼의 소설들에 대해 큰 찬사를 보냈다. 런던 교외에서 벌어진 내전을 다룬 로맨스 소설 <노팅힐 가의 나폴레옹>, 단편집 <별난 손님들이 모이는 술집>, 그리고 큰 인기를 모은 우화 소설 <목요일의 남자>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소설을 사회적 가치판단과 결부시키면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사례로는 역시 로마 카톨릭 사제 겸 탐정인 신부를 등장시킨 <브라운 신부>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
1911년에 발표된 〈브라운 신부의 결백 The Innocence of Father Brown〉를 필두로 1914년 〈브라운 신부의 지혜 The Wisdom of Father Brown〉, 1926년 〈브라운 신부의 불신 The Incredulity of Father Brown〉, 1927년 〈브라운 신부의 비밀 The Secret of Father Brown〉, 그리고 1935년에 발표된 〈브라운 신부의 추문 The Scandal of Father Brown〉이 그것이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 아가사 크리스티의 포와로 시리즈와 함께 영국의 정통 탐정 삼인방으로 거론될 정도로 유명하다. 현재에도 드라마와 영화로 계속 제작되며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증거주의에 철저하여 과학적 추리의 효시라 할 홈즈를 롤모델로 한 다른 탐정들과 달리, 브라운 신부는 사제라는 직업적 특성을 잘 살려 범죄자의 심리를 간파해 나가는 독특한 기법으로 사건의 진상에 도달한다. 또 인간성과 죄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이 돋보여 체스터튼만의 통찰력이 빛을 발휘한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저작을 남기고 당대 지성들과 교류하며 19~20세기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한 체스터튼은 1936년 초여름 영국 버킹엄셔 비컨즈필드에서 숨을 거두었다. 같은 해 그의 일대기를 기록한 〈자서전〉이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