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경찰청장 발렝탱은 희대의 범죄자 플랑보가 런던으로 향한다는 첩보를 접한다. 그는 직접 플랑보를 잡으려 영국으로 향한다. 열차 안에서 그는 어리숙한 영국 신부 브라운을 알게 된다. 신부는 허름한 보퉁이에 싼 물건이 값비싼 은과 푸른 보석이라고 떠벌린다. 열차 안에 변장한 플랑보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발렝탱은 나중에 신부에게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라고 충고한다. 영국에 도착할 때까지 발렝탱은 플랑보의 변장에 대한 어떤 단서도 잡지 못한다. 그러나 어떻게든 체포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항구에서부터 기이한 단서를 쫓아 추적을 시작하는데...
<푸른 십자가>는 영국의 3대 추리 소설가로 꼽히는 길버트 체스터튼의 단편 소설이다. 유명한 브라운 신부 시리즈 최초의 작품이다. 대담한 수법과 남다른 체력으로 악명을 떨친 희대의 범죄자 플랑보와 그를 추적하는 파리 경찰청장 발렝탱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 중 드물게 신부가 아니라 발렝탱 시각에서 범인을 쫓는 과정을 기술한 것도 이채롭다. 브라운 신부는 셜록 홈즈 등 유명한 당대 탐정들과 달리, 현장 증거 위주로만 범인 정체와 범죄 수법을 추리하지 않는다. 사제답게 범인과 주변인의 심층 심리를 치밀하게 파고 들어 인간의 본질을 통찰한다. 이런 독자성으로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큰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에도 BBC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된다.
이 작품은 1910년 7월 23일 <발렝땡의 기이한 추적>(Valentin Follows a Curious Trail)이라는 제목으로 미국 필라델피아 '토요일 석간 포스트'(Saturday Evening Post)지에 처음 게재되었다. 이후 <푸른 십자가>로 바뀐 제목으로 같은 해 9월 영국 런던의 스토리 텔러(The Story-Teller)잡지에 소개되었다. 이어지는 브라운 신부 시리즈 단편에서 발렝땡의 극적인 반전은 추리소설 역사에서도 드문 서프라이즈로 꼽힌다. 그만큼 작가 체스터튼의 인간에 대한 통찰력과 뛰어난 지성, 위트가 돋보인다.
- G. K. 체스터튼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Gilbert Keith Chesterton, 1874년 5월 29일 ~ 1936년 6월 14일)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영국 작가 중 하나다.
런던 켄싱턴에서 태어난 그는 세인트폴 스쿨을 거쳐 슬레이드 스쿨에서 미술을,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체스터튼은 전기(傳記), 종교 문학, 시(詩), 판타지, 탐정 소설, 철학적 담론 등 다양한 분야의 집필 활동을 했다. 특유의 재기발랄하고 독창적인 역설의 적절한 사용을 통해 '역설의 대가'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호탕한 성격과 육중한 체구의 소유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철학적, 종교적으로는 13세기 스콜라 철학의 거두인 저명한 토마스 아퀴나스, 문학적으로는 영국 문학 최고 천재 중 하나로 꼽히는 찰스 디킨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그는 생전에 H. G. 웰스, 조지 버나드 쇼, 힐레어 벨럭, 막스 비어봄 등 다방면의 걸출한 인사들과 우정을 나누었다.
한편 체스터튼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저명인사로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판타지 문학의 거장으로 우뚝 선 J.R.R. 톨킨, 19세기 가장 중요한 시인 중 하나인 T.S. 엘리어트 등이 있다.
많은 독자가 체스터튼의 소설들에 대해 큰 찬사를 보냈다. 런던 교외에서 벌어진 내전을 다룬 로맨스 소설 <노팅힐 가의 나폴레옹>, 단편집 <별난 손님들이 모이는 술집>, 그리고 큰 인기를 모은 우화 소설 <목요일의 남자>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소설을 사회적 가치판단과 결부시키면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사례로는 역시 로마 카톨릭 사제 겸 탐정인 신부를 등장시킨 <브라운 신부>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
1911년에 발표된 〈브라운 신부의 결백 The Innocence of Father Brown〉를 필두로 1914년 〈지혜 The Wisdom of Father Brown〉, 1926년 〈불신 The Incredulity of Father Brown〉, 1927년 〈비밀 The Secret of Father Brown〉, 그리고 1935년에 발표된 〈브라운 신부의 추문 The Scandal of Father Brown〉이 그것이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 아가사 크리스티의 포와로 시리즈와 함께 대표적인 영국의 정통 탐정 삼인방으로 거론될 정도로 유명하며, 현재에도 드라마와 영화로 계속 제작되며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증거주의에 철저해 과학적 추리의 효시 격이라 할 홈즈를 롤모델로 한 다른 탐정들과 달리 브라운 신부는 사제라는 직업적 특성에 철저하게 범죄자의 심리를 간파해 나가는 독특한 기법으로 사건의 진상에 도달하고, 죄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이 돋보여 인간 심리에 정통한 체스터튼의 진면모를 보여준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저작을 남기고, 당대 지성인들과 교류하며 19세기~20세기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한 체스터튼은 1936년 초여름 영국 버킹엄셔 비컨즈필드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같은 해 그의 일대기를 기록한 〈자서전〉이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