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지극히 사랑하는 왕과 왕비가 있지만, 이들에게는 자녀가 없다. 이로 인해 왕비의 근심은 날로 깊어간다. 어느 날 폭포수 옆에서 커다란 가재 한 마리가 나타나 왕비에게 자신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오면 소원을 이룰 것이라고 말한다. 왕비는 반신반의하면서도 가재를 따라간다. 놀랍게도 가재는 큰 힘을 가진 요정이었고, 왕비는 눈부신 요정의 나라에 초대된다.
왕국으로 돌아온 지 열달 후, 왕비는 꿈에 그리던 어여쁜 아기를 얻는다. 하늘의 모든 별을 합친 것보다도 사랑스러운 예쁜 공주였다. 왕비는 데지레라는 이름의 아기를 축하하기 위해 큰 잔치를 베푼다. 그런데 모든 사람과 요정을 초대하지만, 깜박하고 가장 중요한 은인 가재 요정을 부르는 것을 잊는다. 왕비의 배은망덕에 크게 분노한 가재 요정은 아기에게 큰 저주를 내린다. 그 결과 공주는 15살이 될 때까지 햇볕도 보지 못하고 지하 성에 갇혀 자라야 하는 처지가 되는데...
<하얀 암사슴>의 원제는 LA BICHE AU BOIS이다. 프랑스 귀족 부인 겸 동화 작가 마리 캐서린 돌누아 백작부인이 지은 중편 동화다. 돌누아 백작 부인은 이 외에도 유명한 <파랑새> 동화를 포함해 많은 신비한 요정 이야기를 지었으며, 샤를 페로와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원조 동화 작가다.
- M. C. 돌누아
프랑스의 유명한 동화 작가 돌누아의 본명은 마리 카트린느 르 쥬멜 드 바르네빌(Marie-Catherine Le Jumel de Barneville, Baroness d'Aulnoy)라는 긴 이름이다. 돌누아 백작 부인(Countess d'Aulnoy)으로도 알려졌다. 그녀는 최초로 동화(contes de fées)라는 용어를 창안했으며, 흥미롭고 신비한 여러 동화를 지었다.
프랑스 노르망디 북서브 바르네빌라베트랑 출신으로, 정확한 출생년월일은 알려지지 않았다. 대략 1650년~1652년 사이로 추정된다.
귀족 가문 태생이었지만, 그녀의 초년 삶은 순탄치 못했다. 우선 마리는 아버지의 강요로 15세 무렵 30세나 많은 돌누아 남작과 결혼해야 했다. 이런 일은 당시 귀족 사회 관습으로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 남편은 부르봉 왕조와도 이어진 파리의 막강한 방돔 공작 가문 출신이었다. 하지만 도박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고 한다.
1669년 돌누아 남작이 반역 행위로 기소되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재판에서 누명을 벗지 못하면 처형 당할 중죄였다. 남작은 3년이나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되었으나, 마침내 무혐의로 석방되었다. 대신 그를 기소하도록 한 두 남자가 처형 당했는데, 이들은 마리와 그녀의 재혼한 어머니와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리의 어머니는 영국으로 피신했고, 마리 역시 극적으로 체포를 피해 수녀원으로 도피했다.
이후 13년여 간 마리는 영국과 네덜란드, 스페인 등을 떠돌았다. 이 시기 그녀의 행적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훗날 연구자들은 그녀가 프랑스 정부의 스파이로 모종의 임무를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아마도 이에 대한 보답으로 1685년 마리는 프랑스로 돌아와 파리의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후 마리는 왕족들과 귀족들이 자주 드나드는 살롱 모임을 주최했다.
마리는 세 권의 회고록과 두 권의 동화집, 그리고 세 권의 역사 소설을 포함해 12권의 책을 출판했다. 일부 논란도 있었지만 그녀의 저작들은 큰 인기를 끌었다. 그녀는 역사의 뮤즈 클리오라 불리기도 했으며, 저명한 학술 모임 회원이 되기도 했다. 마리가 쓴 저작 중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그녀가 쓴 동화와 모험 이야기들이었다. 그녀는 독일의 그림 형제보다 130여 년이나 앞서 유럽 각지에서 구전으로 전해 오던 민담과 전설을 쉬운 대화체 이야기로 엮어냈다.
1699년 마리는 친구 안젤리크 티쿠엣과 관련된 스캔들에 연루된다. 안젤리크는 마리와 마찬가지로 원치 않는 귀족 가문간의 강제 결혼을 한 처지였으며,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며 불행한 삶을 보냈다. 어느 날 하인이 티쿠엣 의원에게 총을 쏴서 부상을 입혔는데, 여기에 마리가 연루되었다는 소문이 흘러나온 것이다. 하인은 교수형에 처해졌지만, 마리에게까지 박해가 미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후 마리는 20여 년간 파리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동화 작가로서 마리가 쓴 이야기 대부분은 그녀의 삶이 그러했듯 큰 어려움을 극복한 후 마침내 사랑과 행복을 얻게 되는 유형이다. 저주를 받아 사슴이나 고양이 등 동물로 변한 주인공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고대부터 전해 오는 '동물 신부' 혹은 '동물 신랑' 설화 유형에서 모티브를 얻어 그녀만의 언어로 흥미있게 각색해 성공한 작품도 여럿이다.
이처럼 파란만장한 생애를 거치며 여성의 몸으로 많은 동화와 저작물을 남긴 마리는 1705년 1월 14일 프랑스 파리에서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