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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아이

<별의 아이>는 빅토리아 시대 최고 천재의 하나로 꼽히는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쓴 매혹적인 중편 동화다. 어느 숲에서 가난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다가 버려진 갓난 사내 아이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가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 키운다. 아이는 자라면서 점점 눈부시게 아름다운 용모를 갖게 되어 다른 아이들의 추종을 받지만, 아름다움만큼이나 허영심도 많고 이기적이다. 어느 날 아이는 허름한 걸인에 불과한 여인이 자신의 친어머니라는 걸 알게 되고, 크게 실망해 매달리는 생모를 잔인하게 무시한다. 이후 아이는 하늘의 벌을 받아 끔찍하게 추악한 얼굴로 변하고, 주위의 조롱과 멸시를 받게 되는데....별의 아이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별의 아이>는 내용도 흥미롭지만, 미(美)와 진(眞), 선(善)에 대..
<별의 아이>는 빅토리아 시대 최고 천재의 하나로 꼽히는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쓴 매혹적인 중편 동화다.

어느 숲에서 가난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다가 버려진 갓난 사내 아이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가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 키운다. 아이는 자라면서 점점 눈부시게 아름다운 용모를 갖게 되어 다른 아이들의 추종을 받지만, 아름다움만큼이나 허영심도 많고 이기적이다.

어느 날 아이는 허름한 걸인에 불과한 여인이 자신의 친어머니라는 걸 알게 되고, 크게 실망해 매달리는 생모를 잔인하게 무시한다. 이후 아이는 하늘의 벌을 받아 끔찍하게 추악한 얼굴로 변하고, 주위의 조롱과 멸시를 받게 되는데....별의 아이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별의 아이>는 내용도 흥미롭지만, 미(美)와 진(眞), 선(善)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이 엿보이는 훌륭한 작품이다. 와일드의 첫번째 동화집인 1888년 <행복한 왕자와 다른 이야기들>에 이어 3년만인 1891년 출간한 두번째 동화집 <석류의 집>에 수록된 작품 중 하나다.

와일드는 이 <별의 아이>를 마고 애스퀴스로 알려진 영국 사교계 명사이자 작가, 그리고 자유당 출신으로 영국 수상을 역임한 아스퀴스와 결혼한 백작 부인 엠마 마가렛 애스커스에게 헌정했다고 한다.
-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풀네임 오스카 핑걸 오플래허티 윌스 와일드(Oscar Fingal O'Fflahertie Wills Wilde)인 오스카 와일드는 아일랜드 출신 시인이자 극작가다.

그는 1854년 10월 16일 아일랜드 더블린의 웨스트랜드 로우에서 태어났다. 1878년 영국 명문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이로부터 10년 후 동화책 <행복한 왕자>를 출간했다. 1891년에는 유명한 탐미주의 장편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펴냈다. 이 작품은 20세기, 21세기에도 수차례 영화로 제작되며 인기를 얻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 최고의 천재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다방면에 걸쳐 재능이 풍부했다. 동화, 소설뿐 아니라 시, 희곡, 평론 등 여러 분야의 글을 썼으며, 1890년대 런던에서 가장 저명한 극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재기 발랄한 그는 삶의 본질을 관통하면서도 유머와 위트 감각이 살아 있는 짧은 명언으로도 유명해서, 명언 제조기로 불리기도 했다. 미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세관 직원이 소지한 짐 중 신고할 물품이 뭐냐고 묻자, '신고할 것은 나의 천재성밖에 없소.'라고 답할 정도로 자신감과 재능이 넘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는 콘스탄스 로이드라는 여성과 결혼해 시릴과 비비언이라는 두 아들을 두었고, 이들을 극진히 사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양성애적 성향을 갖고 있던 그는 미소년에 대한 탐닉을 자제하지 못했다. 당시 유럽 사회는 기독교적 도덕 질서로 이는 용납될 수 없는 취향이었다. 오스카는 결국 어느 미소년과의 애정 행각이 들통나며 몰락을 시작했다.

1895년 41세의 그는 결국 <풍기문란죄>로 영국 감옥에 2년간 수감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그는 동성애가 범죄는 아니라며,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오히려 이를 권장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역설하는 등 적극 항변했다. 그러나 옥중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는 영적인 회복을 경험했고, 카톨릭 교회에 편지를 보내는 등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 이 시기 참회록 형식의 글을 작성해 이후 <옥중기> 혹은 <심연으로부터>라는 책을 1897년에 출간하기도 했다.

또한 오스카는 영국 감옥의 비위생적 상태며 지나치게 형편없는 식사와 가혹한 상황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리하여 '세바스찬 멜모스' 라는 가명으로 데일리 크로니클 신문의 편집자에게 장문의 편지 두 장을 쓰기도 했는데, 그 내용은 영국 감옥의 잔인한 실태를 설명하고 형벌 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그는 마틴이라는 감옥 소장이 빈혈에 시달리는 어린이 수감자를 불쌍히 여겨 비스킷을 주었다는 이유로 해고될 정도로 영국 감옥이 비인간적이며, 부패가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석방된 이후 오스카는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으나, 위생 상태가 불결하고 추운 감옥 생활에서 얻은 여러 질병으로 고통을 겪었다. 또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제때 치료도 받지 못했으나, 어쩌다 돈이 생기면 술값으로 날리는 등 절망적인 생활을 했다. 이 시기 그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옛 지인인 귀족 부인에게 '지금부터 내가 끔찍한 얘기를 할 작정입니다. 돈 좀 빌려주십시오.'라고 할 정도로 곤궁했다.

특히 두 아들을 볼 권리를 박탈 당한 것에 큰 슬픔과 절망을 느꼈다고 한다. 이처럼 남다른 천재성으로 일찍부터 찬란한 전성기를 보내다가 방탕한 일탈로 인해 몰락한 그는 1900년 겨울, 프랑스 파리에서 뇌수막염에 걸렸다. 사경을 헤매던 오스카는 11월 29일, 고향인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커스버트 던(Cuthbert Dunne)신부로부터 극적으로 카톨릭 교회식 세례를 받았다.

그는 어린 시절에도 카톨릭 세례를 받았는데, 죽기 직전 신앙을 회복한 것이다. 훗날 던 신부는 그 과정을 기록했는데, '내가 도착했을 때 오스카 와일드는 반쯤 혼수상태라 성체를 집전할 수 있을지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세례를 시작하자 그는 의식을 회복했고, 신앙과 소망, 사랑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겸손하게 순종하며 기도 낭송에 귀를 기울였으며 그대로 따라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라고 증언하고 있다.

이처럼 숨을 거두기 하루 전인 11월 29일 최후의 세례를 받은 오스카 와일드는 다음날인 1900년 11월 30일 파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유해는 파리 외곽의 한 묘지에 매장되었다. 그의 사후 100년도 더 훌쩍 지난 2017년 영국에서는 동성애 자체는 형사 범죄가 아니라는 '치안 및 범죄법(Policing and Crime Act 2017)'이 제정되었고, 이에 따라 약 50,000명의 형사처벌자들과 함께 사후 자동 사면되었다.

그의 대표작은 전술한 <도리언 그레이의 표상>을 비롯해 <아서 새빌 경의 범죄와 다른 소설들>, <캔터빌의 유령>, <모범적인 백만장자>, <비밀이 없는 스핑크스> 등의 소설, <행복한 왕자>, <이기적인 거인>, <별의 아이>, <나이팅게일과 장미>, <유별난 로켓불꽃> 등 다수의 아름답고 감동적인 동화, <레딩 감옥의 노래>, <라벤나> 등 시집, 유명한 <살로메>, <파두아의 공작부인>, <보잘것 없는 여인>, <진지함의 중요성> 등 희곡, <가면의 진실>, <거짓의 타락>, <펜, 연필, 그리고 독>, <예술가로서의 비평가>, <사회주의에서의 인간의 영혼>, <심연으로부터> 등 여러 권의 탁월한 수필집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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