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정과 죽음의 신>은 어린이 모험 소설로 최초로 카네기 상을 수상한 영국의 저명한 동화 작가 겸 저널리스트 아서 랜섬이 쓴 러시아 민담이다.
영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독서와 글쓰기에 깊은 조예를 지녔던 랜섬은 성장 후 러시아의 민속학을 공부하러 홀로 러시아로 떠나 다년간 머문 적이 있었다. 이때 러시아 각지의 민담을 연구 수집해 관련 작품을 영어로 출간했는데, <병정과 죽음의 신>도 그때 발표한 이야기 중 하나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평범한 병정이다. 짜르를 위해 오랜 기간 목숨을 걸고 일했지만, 제대할 때는 오직 비스킷 세 개밖에 받은 게 없었다. 그러나 그 비스킷마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례로 거지들을 만나며 적선하여, 곧 빈털터리가 될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눈앞에서 굶어 죽어갈 듯한 늙은 거지를 외면할 수 없던 병정은 마침내 마지막 남은 비스킷마저 처음 보는 거지에게 아낌없이 베푼다. 그런 병정에게 늙은 거지는 보답으로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는 광주리와 절대로 지는 법이 없는 트럼프 카드를 한 벌 준다.
병정은 이 두 가지 선물을 갖고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지옥에서 천국 사이의 무수한 영역으로 데려다 줄 여정을 이어가게 된다. 왕도 만나고, 악마도 만나고, 마침내 죽음의 신까지 만나게 되는 병정. 과연 병정은 죽음의 신을 이길 수 있을까?
함께 수록된 두 편의 이야기 역시 러시아에서 전해오는 민담이다.
<때투성이 사나이>의 주인공 역시 가난한 제대 군인이다. 일자리도, 먹을 것과 잠잘 곳도 없는 군인은 우연히 꼬마 악마와 만난다. 꼬마 악마는 자신과 계약을 하고 지키기만 하면 큰돈을 얻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런데 그 계약 내용이란, 무려 15년 동안 군인이 절대로 머리든 몸이든 씻지도 말고, 손발톱도 깎지 말고, 이빨도 닦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달리 살길이 막막하던 군인은 꼬마 악마의 제안을 수락하고, 그날부터 전혀 씻지 않는 사나이가 되는데...돈은 산더미처럼 쌓여도 악취가 진동하는 때투성이 사나이가 된 군인의 운명은 장차 어떻게 될까?
<보물>은 가난하지만 정직한 노인과 탐욕스러운 성직자의 이야기다. 한 할아버지가 함께 살던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러주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한다. 하지만 돈 한 푼 없는 할아버지의 사정을 아는 이웃 사람들은 이를 모른 척한다.
마침내 할아버지는 마을의 목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실천한다는 성직자의 탈을 썼으나 무척 욕심이 사납던 목사는 돈도 없이 장례를 도와달라고 오는 법은 없다며 가혹하게 할아버지를 내친다.
할 수 없이 할아버지는 늙은 몸을 이끌고 산으로 가서 직접 할머니를 묻을 땅을 파기 시작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땅속에서 번쩍번쩍하는 금화가 가득 든 단지를 발견하는데....
할아버지는 하나님이 자신을 가엾게 여겨서 주신 선물이라고 여기고 크게 기뻐하며, 보물을 갖고 집에 돌아와서 다시 목사에게 장례를 부탁한다. 목사는 할아버지의 행운에 배가 아파 어떻게든 그 보물을 빼앗을 궁리를 하는데...과연 목사와 할아버지는 장차 어떻게 될까?
이 책에 실린 러시아 민담들은 하나님과 악마, 부패한 성직자와 돈이 궁한 왕족들, 가진 것은 없어도 선량함과 정직함을 무기로 삶을 헤쳐가는 평범한 러시아인들을 등장시켜 훌륭한 비유를 통해, 때로는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스토리로 잘 담아내며 재미와 더불어 삶의 진정한 가치와 미덕을 일깨워준다.
- 아서 랜섬(Arthur Ransome)
<병정과 죽음의 신>을 쓴 아서 랜섬은 영국의 작가 겸 저널리스트다.
1884년 1월 18일 요크셔 지방의 리드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는데, 아서가 어린 시절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때이른 부친의 죽음은 이후 아서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어린 아서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외로움을 달랬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아들이 글쓰기를 위해 학업을 포기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지만, 나중에는 격려하며 책을 출판하도록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아서는 럭비 스쿨(Rugby School)에서 공부를 했는데, 묘하게도 학창 시절 루이스 캐롤이라는 필명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펴 낸 유명한 옥스퍼드 대학 수학 교수 찰스 루드윅 도지슨이 썼던 공부방을 그대로 썼다고 한다. 아서는 시력이 좋지 않았고, 운동 신경도 뛰어나지 않았지만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열정은 여전했다.
럭비 스쿨을 마친 아서는 아버지가 재직했던 요크셔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자연과학보다 글쓰기에 더 재능과 관심이 많던 그는 대학 1년을 마친 후 학업을 중단하고, 런던으로 가서 작은 출판사에 취직해 본격적으로 문학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런던에서 아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를 본격적으로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출판사의 파산으로 일부만 출판할 수 있었다. 1909년 아이비 콘스탄스 워커와 결혼하여 딸을 낳았으나, 결혼생활은 썩 성공적이지 않아서 1924년 이혼했다.
아서는 지속적으로 동화를 쓰는 한편, 다양한 작가에 대한 전기 및 문학 비평도 쓰기 시작했다. 저널리스트로서 날카로운 안목과 탄탄한 필력으로 그는 에드가 알란 포우나 오스카 와일드 등 저명한 작가에 대한 연구와 집필을 남겼다.
1913년 아서는 민속학을 공부하기 위해 혼자 러시아로 떠났고, 러시아 민담을 연구 수집해 관련 작품들을 출판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그는 외신 특파원이 되어 급진 언론인 더 데일리 뉴스에 동부전선의 전황을 취재해 보고했다.
1917년 그는 20세기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친 러시아의 붉은 혁명을 현장에서 목격했고, 이 경험을 영국 맨체스터 가디언지에 꼼꼼하게 기고했다.
아서는 초창기 볼셰비키의 대의에 찬성했고, 블라디미르 레닌, 레온 트로츠키, 카를 라데크를 비롯한 많은 혁명 지도자들과 개인적 친분을 가졌다. 훗날 그의 두번째 아내가 된 예브게니아 페트로브나 셀레피나는 그와 만날 당시 트로츠키의 개인 비서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서를 공산주의자로 보기는 어렵다. 그는 러시아 혁명 지도자들과 가깝게 지냈지만, 은밀히 영국 정보국(British Secret Intelligence Service)과 영국 관리들에게 정보를 제공했고, 영국은 그가 보낸 파일에 코드 명 S.76을 부여했는데 그 내용 대부분은 볼셰비키 지도자들과 타협을 거부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1919년 아서는 러시아에서 자신의 신분의 노출될 위험에 처했으며, 영국과 러시아 지도부 사이에서 당신 발칸 반도 국가들까지 개입된 내전을 중단하기 위한 중요한 비밀 휴전 제안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이후 아서는 첫번째 부인과 이혼한 후 예브게니아와 재혼해 러시아를 탈출해 스칸디나비아로 향했다. 이후 그는 잉글랜드 북서부의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정착했고, 1929년 최고의 영국 아동 문학의 하나로 꼽히는 <제비와 아마존(Swallows and Amazons)>을 집필했다.
이 책은 그에게 아동 문학 작가로 큰 명성을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이후 모든 시대의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 보물 같은 동화를 써내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동화 외에도 일반 소설과 탐정 소설, 문학 비평, 시사 기사 등 다양한 집필 활동을 하던 그는 1936년 저서 <비둘기 통신(Pigeon Post)>이라는 뛰어난 어린이 모험 소설로 최초의 카네기 메달을 수상했다. 또한 <비둘기 통신>은 그해 최고의 아동 도서로 선정되었으며, 더럼 대학교와 요크셔 대학은 그에게 명예 예술학 석사, 명예 문학 박사 학위 등 각종 영예를 수여했다.
이처럼 나이가 들면서 동화 작가로서의 역량에 점점 빛을 발하고, 다수의 수작을 남긴 아서 랜섬은 1967년 6월 3일 83세의 나이로 영국 그레이터 맨체스터의 치들 왕립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아서와 그의 아내 예브게니아는 그들의 정착지인 레이크 디스트릭트 남쪽 루슬랜드에 있는 세인트 폴 처치의 교회 마당에 묻혔다.
랜섬이 사망한 후 9년이 지난 1976년, 저명한 영국 전기 작가이자 출판업자인 루퍼트 하트-데이비스가 편집한 <아서 랜섬 전기>가 출판되었다. 이 책은 랜섬이 1931년 <피터 덕>을 완성할 때까지의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