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가르친다>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레샤 우크라인카가 지은 동화다.
조금 어리석지만 기운이 팔팔한 어린 참새가 ‘지혜’를 얻기 위해 온갖 새를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떤 새도 참새가 구하는 지혜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마침내 마지막에 만난 떼까마귀가 무언가 말해주지만, 어린 참새로서는 알아듣기 힘든 알쏭달쏭한 이야기다. 마침내 어린 참새는 다른 새들을 찾아다니며 물어보는 여행을 포기하고, 다시 평소와 같은 생활로 돌아온다.
하지만 지혜가 부족해 여전히 먹을 것을 구하기도 힘들고, 추운 겨울마저 닥쳐와 참새는 위기를 맞는데....우리의 참새는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이겨낼까?
동화 <고난이 가르친다>는 어린 참새의 고군분투를 통해 삶에 꼭 필요한 지혜를 얻는 과정을 유쾌하고 발랄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예술적 감수성 풍부한 우크라이나 출신 화가 페트로 아나톨리요비치 훌린의 사랑스럽고 다정한 총천연색 삽화들이 이야기를 더욱 빛내준다.
- 레샤 우크라인카
동화 <고난이 가르친다>를 쓴 레샤 우크라인카(Lesya Ukrainka, 우크라이나어 : Леся Українка)는 우크라이나 출신 여류 작가다.
우크라이나 문학 사상 가장 중요한 작가의 하나이자, 또한 당시 러시아 제국주의에 항거한 저명한 정치, 시민 운동가이자 여권 운동가였다.
레샤는 1871년 2월 25일 우크라이나 노보흐라드-볼린스키 (Novohrad-Volynskyi, 현재의 즈바이아헬, Zviahel)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페트로 코삭은 귀족 출신으로 페테르스부르그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했고, 키예프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지식인이었다. 어머니는 올하 드라호마니프는 당대 유명한 작가이자 출판업자로, 여권 신장에 관심이 많아 자녀 교육에도 적극적이었다.
레샤는 이런 부모 밑에서 3녀 1남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당시 러시아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던 우크라이나는 독립의 열망이 강했다. 애국자인 레샤의 부모는 러시아로 교육하는 일반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지 않고, 모국어인 우크라이나어로 교육하기 위해 가정 교육을 택했다.
레샤는 4살 때부터 읽기를 배웠으며, 외국어에 탁월한 재능이 있어서 모국어인 우크라이나어 외에도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라틴어, 폴란드어, 러시아어, 불가리아어를 습득했다. 또 일찌감치 동생들을 위해 <동방의 고대 역사>(The Ancient History of Oriental Peoples)라는 수백 페이지짜리 책을 직접 쓸 정도로 학문적 재능이 뛰어났다.
이처럼 조숙하고 영특했던 레샤는 8세 때 러시아 짜르 전제 정치에 반대하는 정치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고모가 체포되어 추방되자, 이에 희망(Hope)이라는 첫 시를 썼다. 이후 레샤는 평생에 걸쳐 다수의 시와 희곡, 소설과 동화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한편 결핵으로 고생했던 레샤는 기후가 따뜻하고 공기가 좋은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나야 했고, 그 결과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불가리아, 크림 반도, 코카서스, 이집트 등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1897년 얄타에서 치료를 받던 동안 역시 결핵 치료를 받던 민스크의 관료 세르히 메르진스키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이 사랑의 감정은 레샤의 문학에도 반영되어 그녀는 <당신의 편지에서는 항상 시든 장미 향기가 난다>,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에게 날아가는 것> 등의 작품을 썼으나, 생전에는 출판하지 않았다.
메르진스키는 1901년 3월 3일 레샤의 옆에서 사망했는데, 그녀는 그의 임종 당시 하룻밤에 극적인 시 <사로잡힌 (Oderzhyma, The Possessed)를 쓰기도 했다.
이후 레샤는 1907년 아마추어 민속학자이자 음악가인 법원 관리 클리멘트 크비트카와 결혼했다. 부부는 크리미아에 정착했으나, 이후 기후가 더 좋은 조지아로 이주했다.
레샤는 1913년 8월 1일 조지아의 수라미에 있는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에는 시집 <노래의 날개들>(1893), <생각과 꿈>(1899), <메아리>(1902), 또한 서사시 <고대 동화>(1893), <하나의 말>(1903), 희곡 <공주> 역 (1913), <카산드라> (1903-1907), <지하 묘지에서> (1905), <숲의 노래> (1911) 등이 있다.
우크라이나와 다른 많은 구소련 치하에서 독립한 공화국에는 짧은 생애지만 뛰어난 문학 작품과 사회 활동에 정열을 불태운 레샤 우크라인카에 대한 기념비가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는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대로에 주요 기념물이 있으며, 마린스키 궁전 옆에도 작은 기념물이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세계 각지에 퍼진 동포들도 캐나다와 미국 전역에 레샤를 기리는 여러 기념 단체를 구성하고, 기념물을 세웠으며 그녀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저명한 작곡가 타마라 말리우코바 시도렌코(Tamara Maliukova Sidorenko, 1919-2005)는 레샤 우크라인카의 시 여러 편을 음악으로 작곡했으며, 우크라이나 국립 은행도 그녀를 기리는 ₴200(이백 흐리브냐)지폐를 발행했다.
2022년 11월 16일 드니프로(Dnipro)의 푸쉬킨 거리(Pushkin Avenue)도 레샤 우크라인카 거리(Lesya Ukrainka Avenue)로 이름이 변경되었으며, 그녀의 탄생 100주년, 150주년을 기리는 기념 우표가 우크라이나와 옛 소련에서도 발행되었다.
그녀의 작품은 문학적 탁월함 외에도 조국 우크라이나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조국애, 개인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뚜렷한 철학으로 당대에도 사후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